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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 Knowledge

LVMH.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가문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피터팬0070 2023.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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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명품 브랜드와 명품 시장을 장악한 남자가 있으니 다름아닌 LVMH 회장 프랑스 베르나르 아르노다. 2022년 기준, 한국의 명품 시장은 약 18.6조원으로 전세계 7위 규모다. 명품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나라인만큼 그 명품 브랜드의 중심에 있는 LVMH 를 알고 이해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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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MH. 베르나르 아르노. 그는 누구인가?

명품 브랜드를 만든 적은 없지만, 명품 산업 자체를 탄생시킨 베르나르 아르노, 그는 프랑스에서 건설업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히 피아노에 굉장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피아노 치는 것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건설사업을 도왔다. 훗날, 그에게 왜 피아노 치는 것을 그만 두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피아노를 매우 잘 다루는 능력이 있었지만, 1등이 되기 위해서는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야 했어. 그게 없었기 때문에 1등이 될 수는 없었고, 그래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어.'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무언가를 함에 있어 1등에 대한 집념이 매우 강했다. 1981년 프랑스에 사회당이 정권을 잡자, 베르나르 아르노는 기업활동에 대한 제재 및 규제가 심할 것 같다고 생각해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 부동산으로 꽤나 큰 돈을 벌고 성공을 했지만 다시 한번 그는 부동산 세계에서 1등이 될 수 없다고 느끼며 다른 기회를 찾는다. 그때 마침 1984년 프랑스의 섬유 재벌기업인 '부삭'의 파산 소식이 그에게 들려온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본인의 전재산과 가족의 재산, 그리고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투자금을 전부 합하여 자기 가족회사보다도 최소 20배 이상 큰 '부삭'을 단 돈 1프랑의 인수에 성공한다. 유독 심할정도로 인수전에 뛰어 들었던 이유는 '부삭'이 진흙 속의 진주인 크리스찬 디올을 소유하고 있었고 디올은 명품 제국의 씨앗이 된 기업으로 예전부터 베르나르 아르노가 눈여겨 보고 있었던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섬유기업 부삭을 인수하고 나서 2년여 동안 부삭의 종업원 약 8천명을 해고하고, 크리스찬 디올등 알짜배기 회사를 제외한 부삭 회사의 모든 자산을 팔아서 5억 불 이상을 번다. 노동자의 일자리와 자산은 그냥 두기로 한 처음의 합의와는 달랐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엄청난 사회적 비판이 일어났고, 터미네이터,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 죽음의 천사와 같은 별명도 함께 얻게 된다. 

 

LVMH
LVMH

 

■ LVMH. 탄생의 시작은?

LVMH.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는 네 개의 가문이 모여 만들어졌다. 첫번째, 루이뷔통의 뷔통 가문, 두번째, 세번째, 모에가와 샹동가의 혼인으로 만들어진 샴페인 회사의 모에, 샹동가문, 그리고 네번째 코냑으로 유명했던 헤네시 가문, 이렇게 네 가문 중에서 샴페인 회사인 모에샹동과 코냑의 헤네시 가문이 합쳐진다. 샴페인과 코냑 둘 모두 주류회사였기 때문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였다. 물론 결과적으로도 대성공이었고 두개의 가문이 합쳐진 다음 20년동안 매출이 3배 이상 뛰며 전 세계 코냑 시장의 20%, 샴페인 시장의 15%를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모에샹동 헤네시 가문의 지분이 합쳐서 약 22%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경영권 방어가 힘들 수도 있었다. 이에 1987년 뤼이뷔통 가문이 나타났으니, 네 가문이 합쳐서 지분의 합이 50%를 넘게 되었다. 이로써 LVMH가 탄생하게 된다.

 

LVMH
LVMH

 

■ LVMH. 맥주회사 기네스의 가세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치만은 않았다. 누가 기득권을 잡을 것이냐, 또 후원은 어떻게 할 것이냐, 예를 들어 루이뷔통은 명품브랜드답게 음악회나 전시회쪽의 후원을 우선으로 삼았고, 모에헤네시는 우승 후 샴페인을 뿌리는 F1 레이스와 같은 곳에 후원하기를 원했다. 동시에 주식장에서 인기종목이었던 LVMH는 50%의 지분만으로는 안정적이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또다시 우군을 얻기 위해 모에헤네시의 주도로 주류 업계의 왕 큰 손이었던 맥주회사 기네스를 끌어 들인다. 기네스에서 3.5% 정도 LVMH 지분을 보유하게 되는데 루이뷔통은 주류업계들이 계속 가세하게 되면 자칫 주도권이 넘어갈 것을 우려한 나머지 여기서 우리의 주인공을 찾게 되는데...

 

기네스
기네스

 

■ LVMH. 크리스찬 디오르의 베르나르 아르노 입성하다.

루이뷔통은 명품 브랜드를 이해할 수 있는 크리스찬 디오르의 수장 베르나르 아르노에게 원군 요청을 하게 되고, 베르나르 아르노 역시 루이뷔통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려 하지만, 섬유업체 부삭을 인수할 때 도움을 준 전설적인 은행가 '앙투안 베른하임' 의 충고를 듣고 주류업체 편에 서게 된다. 충고인 즉, 기네스는 돈이 너무 많고 상대하기가 굉장히 벅찬 기업이기 때문에 그들과 싸워서는 안된다. 자칫 잘못하면 베르나르 아르노 자신까지 위험해 처해지게 된다라는 말을 듣고 기네스와 함께 LVMH의 지분 25%를 사들이게 된다. 이로써 루이뷔통만 주도권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결국 베르나르 아르노의 제국이 탄생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크리스찬 디오르
크리스찬 디오르

 

 

■ LVMH. 1989년 베르나르 아르노 명품 제국을 건설하다.

1989년 LVMH 경영권 분쟁 속에서 회장 자리에 오른 베르나르 아르노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프랑스적인 상품을 팔면서 영미식 자본주의의 자비없는 경쟁 논리를 따랐다. 유서 깊은 럭셔리 명가의 창업자를 몰아내고 가족을 분열시키는 방식도 결코 서슴지 않았다. 구찌와 에르메스를 제외하면 인수 시도에서 실패하는 법은 거의 없었다. 지방시(1988년)부터 겐조와 벨루티(1993년), 겔랑(1994년), 셀린느(1996년), 세포라와 마크 제이콥스(1997년), 테그호이어(1999년), 펜디(2001년), 불가리(2011년), 티파니(2021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모든 명품브랜드가 LVMH 제국의 손에 들어간다. 2023년 7월 기준 어느덧 LVMH 의 시가총액은 5천억달러에 이른다. 1949년생 74세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여전히 활력히 넘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제국은 과연 어디까지 영토 확장을 할 수 있을까? 

LV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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